[] [한국경제] 외국인 피의자의 영사통보권, 선언에 그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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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세담 작성일26-05-0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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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7일자 [한국경제]에 황세영 변호사의 기고문이 게재되었습니다.
[이하 한국경제 기고문 본문]
2024년 봄, 나이지리아 국적의 한 외국인이 서울에서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대마) 혐의로 체포되었다. 수사기관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했고, 이후 구속영장까지 발부되며 수사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객관적 증거를 확보해 나가는 전형적인 마약 사건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중대한 절차가 누락되었다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피의자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영사조력과 방어권 보장의 핵심인 ‘영사통보권’이 실질적으로 고지되었느냐 하는 점이었다. 나는 변호인으로서 이 점을 지적하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했다.
영사통보권, 고립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망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1형사부는 2024년 6월 14일, 피의자에 대한 구속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석방을 결정했다. 법원은 피의자의 국내 체류 사정과 증거 관계뿐만 아니라, 특히 체포·구속 과정에서의 절차적 문제를 비중 있게 고려했다. 이는 외국인 피의자에 대한 절차 보장이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닌, 구속의 정당성을 가르는 본질적 요소임을 확인해 준 결정이었다.
영사통보권은 외국인이 체포·구금될 때 지체 없이 자국 영사기관에 해당 사실을 통보받을 권리다. 이는 비엔나 영사관계협약에 근거한 국제법상 권리이자, 우리 형사소송법과 지침이 수사기관에 부여한 엄격한 의무다.
낯선 사법 시스템과 언어 장벽 앞에 놓인 외국인에게 영사통보권은 고립을 막아주는 유일한 안전망이다. 체포 초기 단계에서의 권리 고지는 이후 수사와 공판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이를 서류상으로만 충족했는지 아니면 피의자가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선택할 기회를 가졌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현장에서 누락된 권리 고지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확인한 사실관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의자와 그 배우자는 체포 당시 영사통보권을 전혀 고지받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실제로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는 변호인 선임권이나 진술거부권에 대한 문답은 있었으나, 영사통보권 고지 여부에 관한 항목은 아예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배우자에게 구두로 설명했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그것만으로는 체포 당시 지체 없이 영사통보권을 고지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실무 현장에서 영사통보권이 여전히 ‘습관화되지 않은 절차’ 혹은 ‘체크리스트에서 누락된 항목’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법치주의의 척도는 절차의 준수에서 시작된다
영사통보권 고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번 사례처럼 절차가 무너진 체포와 구속은 법적 정당성을 잃게 된다. 수사 현장에서는 외국인 체포 시 영사통보권 고지를 별도 항목으로 명문화하여 서면 확인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범죄 혐의를 받는 순간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법의 국제적 신뢰도와 직결된다.
구속은 예외적이어야 하며, 그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절차 또한 예외 없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이번 결정이 향후 수사 현장에서 외국인 피의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다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 법무법인 세담 황세영 변호사
